냉장고는 칸마다 온도가 다르고, 식약처는 냉장 5도·냉동 영하 18도 이하 보관을 권장한다. 식재료를 성격에 맞는 자리에 두면 상하는 속도와 버리는 양이 함께 줄어 정리가 오래 유지된다. 감자·양파처럼 냉장이 오히려 손해인 재료와 문 쪽에 두면 안 되는 달걀부터 자리를 다시 정해보자.
냉장고 정리가 며칠 만에 다시 엉키는 이유는 재료를 넣을 때마다 자리가 바뀌기 때문이다. 빈칸에 되는대로 밀어 넣으면 뒤에 있던 재료가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으면 잊고, 결국 상해서 버린다. 해법은 청소가 아니라 재료마다 고정된 자리를 정하는 것이다.
출발점은 냉장고 안의 온도 차이다. 같은 냉장실이라도 안쪽이 가장 차고 일정하며, 문 쪽은 여닫을 때마다 온도가 오르내린다. 대략 냉동 안쪽 < 냉동 문 < 냉장 안쪽 < 채소칸 < 냉장 문 순으로 따뜻해진다고 보면 된다. 재료의 성격을 이 순서에 맞추는 게 정리의 뼈대다.

Lisa Fotios
온도에 민감한 재료일수록 안쪽으로 보낸다. 육류와 생선은 미생물이 잘 자라 위험이 큰 만큼, 가장 차고 온도가 일정한 하단 안쪽 칸이 맞다. 핏물이 다른 재료에 닿지 않게 접시나 밀폐용기에 받쳐 두는 편이 안전하다.
달걀과 우유는 흔히 문 쪽 전용 칸에 넣지만, 사실 문은 온도 변화가 가장 큰 자리다. 식약처도 달걀은 온도가 일정한 안쪽 보관을 권한다. 문 쪽에는 잼, 버터, 오래 견디는 소스류처럼 온도가 좀 오르내려도 괜찮은 것만 두는 게 원칙이다.
냉장식품은 5도, 냉동식품은 영하 18도 이하로 유지하라는 게 식약처 권고다. 문을 오래 열어두거나 냉장고를 꽉 채우면 찬 공기가 돌지 못해 이 온도가 무너진다. 냉장실은 7할 정도만 채우고 냉동실은 촘촘히 채우는 편이 온도 유지에 유리하다.
모든 재료가 냉장고에 어울리는 건 아니다. 감자는 차게 두면 전분이 당으로 바뀌어 맛이 변하고, 이 감자를 튀기거나 구우면 아크릴아마이드가 늘어난다. 아크릴아마이드는 국제암연구소가 인체 발암 가능 물질로 분류한 성분이다. 감자는 빛을 막고 서늘하며 통풍되는 실온에 두는 편이 낫다.
껍질을 까지 않은 양파도 실온이 원칙이다. 냉장고에 넣으면 습기 탓에 곰팡이가 피거나 물러지기 쉽다. 덜 익은 토마토나 바나나처럼 상온에서 더 익혀 먹는 과일도 굳이 냉장할 필요가 없다. 이런 재료들은 아예 냉장고 밖, 통풍되는 바구니에 따로 자리를 만들어 두면 문을 열 때마다 헷갈리지 않는다.
자리를 정했다면 그 자리가 흐트러지지 않게 고정할 도구가 필요하다. 투명한 밀폐용기와 손잡이 달린 바구니가 가장 쓸모 있다. 안이 보이는 용기는 무엇이 얼마나 남았는지 열지 않고도 확인시켜 주고, 바구니는 '소스', '반찬', '아침거리'처럼 용도별로 통째로 꺼냈다 넣기 좋다.
1인·2인 가구라면 큰 통 하나보다 작은 용기 여러 개가 낫다. 한 번에 먹을 양으로 나눠 담으면 필요한 만큼만 꺼내고 나머지는 그대로 두니 재료가 공기에 닿는 시간이 줄어든다. 냉동실에는 납작하게 눌러 얼린 뒤 세워서 꽂아두면 칸을 책처럼 세로로 쓸 수 있어 뒤엣것이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은 오래된 것을 먼저 쓰는 흐름을 만드는 일이다. 장을 봐 오면 새로 산 재료를 안쪽에 넣고 원래 있던 것을 앞으로 당긴다. 마트 진열대와 같은 선입선출 방식이다.
개봉하거나 소분한 날짜를 용기에 적어두면 더 확실하다. 마스킹테이프에 날짜만 써 붙여도 '이게 언제 것이더라' 하며 냄새를 맡는 일이 사라진다. 냉동실은 특히 시간 감각이 무뎌지는 곳이라, 언 재료일수록 날짜 표기가 낭비를 막아준다. 자리를 정하고, 용기로 고정하고, 오래된 것을 앞에 두는 세 가지가 자리 잡으면 정리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저절로 유지된다.